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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nding

잘 쓰면 되지!

“자네 무슨 일 하나?” 주변 어르신들은 사회 초년생이 된 나를 무척 궁금해하셨다.

디자인 공부를 한다던 녀석이 어떤 직장에 들어갔는지, 월급은 잘 받는지 궁금하실 테니 둘러 물어보신다. “네, 글자 디자인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하니, “아하. 간판 만드는 구만” 하신다. 당시 여느 어르신들의 생각은 글자 하면 간판이 떠오르셨나 보다.

 

글자 디자인(폰트 디자인)을 시작하면서 주변의 글자를 유심히 보게 되고, 좋고 나쁨에 대해 판단하기를 수년간, 가장 눈에 띄는 주위의 글자는 역시 간판이었다. 물론 글자의 표현은 다양한 곳에서 보이지만, 유독 화려하고 멋들어진 간판을 보면 왠지 더욱 설레었던 것 같다. 결국 글자를 디자인하던 몇 년 차부터 간판 전문잡지에 글자 디자인 관련 원고를 수년간 올리게 되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열정 넘치는 젊은 디자이너의 자기 자랑 같아 무척 낯부끄럽지만, 다행인 것은 간판에서의 글자 디자인은 매출에 큰 영향이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게 된 중요한 시기였다.

 

당시 잡지사에서 주관하는 세미나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고, 전문 간판업체에 종사하시는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글자 디자인에 대해 들어 주셨다.

젊은 디자이너의 보잘것없는 강의를 열심히 들어주시던 분들의 질문 중 ‘좋은 글자는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에 좋은 ‘글자는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며 쉽게 떠들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민망하여 참을 수 없지만 이제는 이렇게 답하지 않을까?

 

 

"목적에 맞게 잘 고르시면 그것이 좋은 글자입니다."

 


 

 

요즘 회사 근처에 청년들이 진을 치고 장사하는 골목이 만들어졌다. 삼 년여 된듯한데, 주변에 많은 먹거리 집이 생긴다는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점심 메뉴를 고르는 일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주는지 많은 직장인들은 잘 알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새로 생긴 가게들의 간판이 그동안의 무뎌진 감각을 깨워주는 자극제가 된다는 것이다. 이제껏 깔끔하고 잘 정돈된 간판이 좋다는 생각을 180도 바꿔 주는 고마운 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열정도’ 지금은 꽤 유명해서 저녁이면 동네마다 새로 생긴 청년들의 식당에는 많은 손님들로 북적거린다. 레트로 이미지의 간판과 인포메이션은 오히려 나이 든 중년의 손님보다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꾸밈없이 급하게 혹은 성의 없이 만들어진 듯한 간판이 꽤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는 열정도 거리의 간판과 정보물들이 좋거나 나쁘다를 이야기할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개인별 취향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거리에서 간판을 보며 여유를 느끼는 점심시간을 감사히 여긴다.

다음에 또 주절 주절!

 

 


글쓴이 | RixFont 디자인연구소

김원준 소장